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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영어를 위한 필수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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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토익시험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취업을 위해서 혹은 졸업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영어 공부는 대학생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토익, 토플과 같은 시험은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가늠하게 해주는 척도로 간주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일정 점수를 넘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학생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들은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맹목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공부를 하며, 높은 영어 점수가 자신의 영어 실력을 대변해 준다고 착각을 한다.

 

그렇다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발판으로 삼아 영어라는 도구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영어를 잘하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 즉, 자신들이 한국인임을 재인식하여 한국인의 정서와 한국인들이 공유하는 사고 체계를 영어란 도구로 막힘없이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일례로, 대학생들이 목메는 대기업에서는 단순히 영어 점수가 높은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회사는, 영어를 씀으로써 자신의 기업과 세계 시장 사이에 다리를 놓아 줄 인재를 원하고 있다. 단순히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영어권 국가에서 가져다 쓰면 되는 것이다. 대학에서 졸업 요건으로 영어 시험 점수를 요구하는 것 또한 이러한 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따라서 대학생들은 한국 기업을 잘 표현하는 할 수 있는 영어를 써야 하며, 반대로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선 한국어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혹자는 한국인에게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시각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를 잘 쓰는데 굳이 한국어 교육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견해다. 하지만 잘하는 것과 잘 알아서 활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모두 한국어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방송국의 아나운서와 일반인의 한국어 실력은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표준 발음부터 시작해서 논리적인 글쓰기까지, 같은 토박이 한국어 화자지만 그들이 활용 면에서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한국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선 한국인에게도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어 볼 때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은 커진다.

 

영어 공부를 위한 한국어 교육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한국어라는 그릇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즉 외적인 부분에서 살펴 볼 수가 있으며, 그 그릇 안에 무엇이 담길 수 있는지, 내적인 부분으로 살펴 볼 수가 있다. 전자는 언어 자체에 대한 교육, 후자는 문학 교육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자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는 한국어란 언어, 자체를 공부함으로써 한국어라는 그릇이 영어라는 그릇과 어떠한 차이점을 보이는지 알 수 있다. 실험을 할 때는 대조군과 실험군을 설정한다. 우리의 대조군은 한국어이며, 실험군은 영어이다. 대조군 없는 실험군은 의미가 없다. 이러한 실험은 음성학,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의 수준으로 나누어 실행될 수 있다.

 

첫 번째로, 음성학을 배우며 학습자는 한국어의 발음 체계와 영어의 발음 체계를 자연스럽게 비교한다. 파열음 ‘ㅌ’는 한국어에선 치조에서 영어에선 치조보다 좀 더 뒤쪽 부분인 치경에서 난다는 것을 알면, 이러한 차이가 영어 발음의 독특한 음색을 만들어 낸다는 것까지 간파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음운론을 공부함으로써, 한국어는 모아쓰기를 하고 영어는 풀어쓰기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어에선 ‘컴퓨터’라고 ‘ㅋㅓㅁㅍㅠㅌㅓ’라고 쓰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가 발음을 할 때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어는 한 번에 한 음절을 발음이 되고, 영어는 한 번에 모음 하나 자음 하나씩 발음이 된다.

 

세 번째로, 형태론을 봄으로써, ‘했었었다’와 같은 의미적으로 복잡해 보이는 형태소들의 의미를 좀 더 명확히 할 수 있다. 한국어에서의 형태소와 영어에서의 형태소를 대립시켜봄으로써 어떻게 같은지 어떻게 다른지가 들어난다. 예를 들어, ‘했었었다’가 문단이나 문장에서 과거 사건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 과거 완료(have +past particle)를 쓰는 것이 흐름상 좀 더 매끄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 번째로, 통사론은 두 언어의 구조를 비교하는 틀을 제공한다. 한국어는 접사 따위를 붙이는 교착어이고, 영어는 어미의 변화가 성․수․격을 결정하는 굴절어이다. 한국어는 단어 뒤에 붙는 접사 덕분에 문장의 순서에 구애를 받지 않지만, 영어는 정해진 것이 정해진 자리에 와야 한다. 주어 다음에는 술어가 와야지 목적어가 올 순 없다. 언뜻 보면 다른 건 같으나, 두 언어 모두 단어 배열에 있어서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끼리는 붙어서 나타나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것은 멀리 떨어져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런 식으로 한국어 통사론을 공부함으로써 두 언어의 차이를 좀 더 명확히 할 수 있다.

 

다섯 번째로, 의미론을 배움으로써 한국어 어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이해는 한국어를 영어로 설명할 때 도움을 준다. 꽃샘추위가 ‘꽃이 피는 걸 시샘하는 듯한 추위’를 가리킨다는 것을 모르면 그 어휘가 지니는 독특한 속성을 놓쳐버리는 것이다. 또한 같은 어휘가 쓰이는 상황에 따라서 어떻게 의미가 달라지는지 아는 것도 독특한 표현을 영어로 옮길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위에서 언급된 5가지 실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한국어라는 그릇과 영어라는 그릇이 어떻게 다른지 간략하게나마 살펴봤다. 두 그릇의 차이점을 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한국어라는 그릇에만 담아오던 것을 영어라는 그릇에 맞게끔 변형시킬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를 통해서 우리의 생각과 정서를 표현한다. 영어라는 도구를 사용할 때도 우리는 변함없이 한국인이다. 다만 우리의 생각과 정서가 영어라는 도구로 표현되는 것이다. 영어를 공부해도 생산적인 활동―글쓰기, 말하기―을 할 수 없는 것은 영어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정서와 생각을 담았던 한국어에 대한 통찰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우리의 생각과 정서를 어떻게 담는지 모른 체 영어라는 새 그릇을 쓰려고 한다면 우리의 생각과 정서는 끊겨버리게 된다. 한국어를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영어라는 그릇에 우리의 사고와 정서가 어떻게 담기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과 정서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생긴다. 한국어 교육의 다른 한 면은 그릇 안을 채우는 내용물 즉, 문학교육에 관한 것이다. 문학평론가이자 연세대 국문과 교수인 정현기는 ‘문학은 한 나라의 정신내용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문학은 한 나라의 정신내용을 담고 있는 귀중한 자산이란 말이다. 따라서 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서와 사고 체계를 알아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문학을 접함으로써 제3자의 입장에서 우리를 관찰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어떻게 느끼고 생각했는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정서를 의식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려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한국인은 현재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없다. 타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만 관찰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관찰로 우리는 우리가 무의식속에 넣어 두었던 사고와 정서를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올라 갈 수 있다.

 

문학교육이 활발한 프랑스를 살펴보자. 문학평론가 김치수는 프랑스의 문학교육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나라 대통령이 딱딱한 언어가 아닌 감동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프랑스의 학생들은 초․중․고등학교를 걸치면서 문학적 소양을 탄탄하게 기른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높은 문학 수준은 그들의 대화에서 시의 문구나 소설의 아름다운 대목들이 인용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치수는 이러한 프랑스 문학교육을 보고 “문학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사실도 깨우치게 한다.”고 말했다. 문학을 활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에 대한 통찰이 있다는 얘기고, 자신들의 사고와 정서를 다른 언어에 담을 준비가 돼있다는 얘기다. 문학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살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어 교육은 영어를 잘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다. 한국어란 그릇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피고, 그 그릇이 어떻게 채워지는 관찰하는 것은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한 의미 있는 작업이다. 대학생들은 이 시간에도 한글 해석이 더 어려운 한영사전을 들고 도서관 어딘가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생각한다면,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대학생들은 한국어 공부에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영어에 대한 정확한 시각은 한국어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한국어 공부 장려를 위해 그들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교는 언어학개론, 문학개론 같은 수업을 졸업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 편입해 넣음으로써, 영어의 열기에 상응하는 기폭제를 한국어 교육에 투입해야 한다. 한국어 실력이 진짜 영어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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